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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최초의 정원, 담양 "소쇄원" 한복여행! 2024년 05월 12일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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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굿모닝아시아
댓글 0건 조회 310회 작성일 24-05-1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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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최초의 정원, 담양 소쇄원 한복여행!

1인칭 시점으로 떠나는 힐링여행!


소쇄원 내원의 면적은 1400여 평의 공간에 불과하지만 소쇄원 외원까지 포함하면 수만 평이 된다고 합니다. 소쇄원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 그대로의 원림에 사람이 조성한 인공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때 선비들의 감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곳이 바로 이 소쇄원입니다.


소쇄원은 조선 중종 때, 조광조의 제자였던 양산보가 처음 이곳에 터를 잡아 조성했다고 합니다. 조광조의 제자 양산보가 이곳에 소쇄원을 조성한 이유는 속세를 떠나 은둔생활을 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소쇄원은 1530년대에 양상보의 주도로 조성하기 시작하였는데 그의 자식과 손자 대에 이르러 완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500년 전 조선시대 때 우리의 선조들이 만든 소쇄원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있으면 남다른 감회가 느껴집니다! 우리는 소쇄원에 와서 좀 특별한 기운을 느꼈습니다. 우리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편안하고 아늑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조선시대 때 양상보는 왜 이곳에 소쇄원을 지었을까요?

소쇄원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알아보니깐, 소쇄원을 짓게 된 이유에는 안타깝고 슬픈 사연이 숨어 있었습니다. 조광조의 제자였던 양산보는 그의 스승인 조광조가 기묘사화(1519년)로 죽음을 당하자 큰 충격을 받고, 그는 세상일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고향인 이곳 담양으로 내려와 은둔하면서 소쇄원을 지었다고 합니다.


소쇄원(瀟灑園)이라는 이름속에는 당시에 양산보의 마음을 잘 알 수 있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한자를 풀이하면, 소쇄원은 “물 맑고, 시원하며 깨끗한 원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양산보의 마음에는 "정치에 환멸을 느껴 속세를 떠나서 속이 시원하다"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선시대 때 선비들은 과거급제를 하기 위해 젊은 날을 공부에만 몰두하며 온 열정을 쏟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룬 모든 대업을 다 버리고 낙향한 양상보의 깊은 마음이 소쇄원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소쇄원은 칠천량해전에서 원균이 조선수군을 완전히 말아먹은 뒤,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일본군이 이곳 소쇄원에 불을 질러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그 후 후손들에 의하여 다시 소쇄원이 복원, 중수되었고 현재까지 15대에 걸쳐 후손들이 소쇄원을 잘 보존하며 가꾸어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유산들을 보면 사연 없고 아픔 없는 문화유산들은 없는 거 같습니다!

소쇄원을 처음 건축한 양산보는 임종 직전에 자식과 후손들에게 유언을 남겼는데,


“어느 언덕이나 골짜기를 막론하고 나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니 

이 동산을 남에게 팔거나 양도하지 말고 어리석은 후손에게 물려주지 말 것이며, 

후손 어느 한 사람의 소유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양산보의 후손들은 그의 유언을 대대로 철저하게 지켜서 지금의 소쇄원이 잘 보존되어 내려왔다고 합니다.


소쇄원에서도 입장료를 받는데, 소쇄원의 입장료의 의미가 조금 특별합니다. 소쇄원의 입장료는 수익을 내기 위한 입장료를 받는 게 아니고, 후손들이 소쇄원을 꾸준히 유지하고 보수하기 위한 유지비 명목으로 입장료를 받는다고 합니다.

입장료는 성인 2000원, 청소년 1000원으로 매우 저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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