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의 딸과 결혼한 색욕에 미친 대만 재벌 2025년 10월 01일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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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의 딸과 결혼한 색욕에 미친 재벌
애첩을 무수히 거느리고, 중학교 동창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며, 아내의 친구까지 건드린 색욕에 미친 재벌, 그의 인생은 “좋은 패를 쥐고도 망쳐버린 인생”의 전형이었다.

천억대 부호에서 죄수가 되었고, 결국 친지와 친구들에게 버림받은 채 암에 걸려 사망했다. 34만 명 주주의 눈물과 피가 그의 방탕한 인생의 주석이 되었다.
재벌가의 아들로 태어난 금수저
1963년, 태평양전선전기 그룹이 상장하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당시 자산 규모는 약 1000억 대만달러(약 4조 3천억 원) 에 달했다.
이 무렵 태어난 쑨다오춘(孙道存) 은 “중국 전선의 아버지”로 불린 부친 쑨파민(孙法民) 덕에 황금 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젊은 시절 그는 방탕하고 호화로운 생활에 빠졌고, 결국 아버지는 아들을 군사식 관리가 이뤄지는 학교에 보내야 했다.
사업적 성공과 몰락
방탕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그는 부친의 사업 수완을 물려받았다. 1990년대, 그는 통신업의 기회를 잡아 ‘타이완 대만 모바일’ 을 설립했다.
휴대전화가 아직 사치품이던 시절, 그의 회사는 단숨에 시장을 장악했고, 2000년에는 시가총액 1000억 대만달러(약 4조 3천억 원) 를 돌파해 아시아 최대 민영 통신사가 되었다.
그는 사업 성공 이후 방탕한 생활에 빠졌고, 결국 애첩과 스캔들이 이어졌다.
첫 번째 아내 스튜어디스 왕원롄과 결혼했지만, 그녀의 친구 허녠츠가 그 자리를 빼앗아 두 번째 부인이 되었고, 이후 두 딸과 아들을 낳았다.

끝없는 여성 편력
그는 유명 배우 옌닝, 장충링 등 여러 여성과 스캔들을 일으켰으며, 심지어 부인의 친구까지 건드렸다.
애첩들을 위해 해마다 수십억 원대의 보석·명품·고급차를 사주었고, 심지어 애첩을 별장에 감금하기도 했다.
그룹 붕괴와 거액 횡령
2003년, 그룹은 300억 대만달러(약 1조 3천억 원) 의 자금 구멍이 났다.
그는 애첩과 사치에 회사 돈을 유용했고, 유령 회사를 만들어 225억 대만달러(약 9,675억 원) 를 빼돌렸다.
결국 2004년 태평양전선전기는 상장에서 퇴출되었고, 34만 명의 소액주주가 전 재산을 잃었다.
기이한 결혼과 파산
2009년, 그는 60세 나이에 중학교 동창의 딸 우이핑(당시 28세)을 만나 50일 만에 결혼했다.
아내보다 32살 연상이었으며, 이 결혼은 사회적 충격을 불렀다. 하지만 그는 이미 파산 상태였고, 생활비마저 딸에게 의존해야 했다.
2010년 그는 회계 조작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고, 2017년 최종적으로 수감됐다.
출소 직후에도 1억 4천만 대만달러(약 602억 원) 를 횡령한 혐의로 다시 구속되었으며, 보석금 3000만 대만달러(약 129억 원) 를 내고 잠시 풀려났다가 최종적으로 다시 징역형을 받았다.

쓸쓸한 최후
2021년, 암에 걸려 보석으로 풀려났으나 그해 10월 세상을 떠났다. 향년 72세.
죽을 때조차 연봉 230만 대만달러(약 9억 9천만 원) 를 챙기고 있었고, 그의 빚 7억 대만달러(약 3천억 원) 는 결국 딸이 집을 팔아 갚아야 했다.
장례식에는 거의 아무도 오지 않았고, 호화차 18대를 굴리던 옛 재벌은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